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치바나 무네시게 (문단 편집) === 화려한 재기와 말년 === 위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워낙 충성심과 능력이 뛰어난 인재인지라 1604년에 [[정이대장군]]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에게 소환되어 막부의 고쇼인반토(御書院番頭)[* [[쇼군]]의 친위대장 직책인데, 쇼군의 신변의 총책임자라는 의미인지라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자리였다. 그런데도 한때는 적이었던 서군의 다이묘인 무네시게에게 이 자리를 내린 것은 그만큼이나 이에야스도 무네시게의 인품과 능력을 믿었다는 얘기가 된다. 그리고 이에야스에게 서국무쌍인 무네시게를 등용할 것을 종용한 사람은 다름아닌 동국무쌍인 혼다 타다카츠였다고 전해진다.]라는 직책과 고쿠다카 5,000석의 영지를 받았으며, 이에야스의 후계자 [[도쿠가와 히데타다]]의 오토기슈[* 주군이 다실에서 차를 마실 때 옆에 앉아 통치자에게 필요한 시사와 교양 지식 등을 재담 형식으로 전하는 측근. 주로 명망있는 승려나 절친한 가신이 맡는다.]가 되어 무츠국(陸奥国) 다나구라번(棚倉藩)[* 지금의 [[후쿠시마현]] 히가시시라카와군 다나구라정] 1만석을 가증 받아 다이묘로 복귀한다. 이후 영지의 가증이 더해져 고쿠다카는 3만 5,000석까지 올라가게 되었고, 이때부터 무네시게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. 오사카성 전투 당시에는 무네시게가 또 도요토미 세력에 합류할까봐 걱정한 이에야스가 일찌감치 설득하여 이에야스 휘하로서 [[모리 카츠나가]] 군과 전투를 벌였다. 1620년, 자신의 옛 영지인 치쿠고 야나가와를 다스리던 타나카 가문이 단절되면서 야나가와에 고쿠다카 10만 9,200석의 다이묘로 [[금의환향|다시 돌아오게 된다]]. 그 후 [[시마바라의 난]]을 진압할 때도 활약해 왕년의 용맹을 과시하는 등, 다른 서군 소속 영주들에 비해 나름 괜찮은 말년을 보내고 최후를 맞는다. 향년 76세. 타치바나 무네시게는 평생 아들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, 친동생인 [[타치바나 나오츠구]]의 아들이자 조카 타치바나 타다시게(立花忠茂, 1612 ~ 1675)를 양자로 들여 자신의 뒤를 잇게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